세상을 다가져라 Na

서울대 법대 1학년 송요훈 "왜 공부했냐고? 재미있으니까!"
배움 즐기다보니 어느새 '공부의 신'…EBS 외국어영역 강사 활약

공주의 '민사고'라 일컫는 공주 한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했다고 하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겠구나 라고 짐작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추측과는 달리 공부를 즐거운 놀이처럼 즐겼다면 어떨까. 그리고도 이런 화려한 성취를 이뤘다면 운도 많이 따랐을 거라 여길지 모른다. 과연 그랬을까.

당사자 송요훈 씨는 말한다. 자신이 이룬 것은 운이 따라야 하는 꿈이 아니라 누구나 이룰 수 있는 평범한 현실이라고. 또한 공부는 즐거운 것이며 이를 즐길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공부가 즐거운 것일까. '해야 할 공부'가 아닌 '하고 싶은 공부'로 만드는 게 공부 비결이라는 송요훈 씨에게 즐거운 공부법을 물었다.

공부는 재미가 전부다

송 씨는 공주한일고를 나와 서울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것 말고도 부러울 만한 이력이 많다. 중학교 때 토익 950점을 받았는가 하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리랑 TV '퀴즈 챔피언'에 학교 대표팀 주장으로 나가서 5연승을 거두고 기장원전에서 3위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토익 만점, 텝스 963점의 성적을 거둬 주변을 놀라게 했는가 하면, 전국영어연극대회 3위, 금연영어웅변대회에서 국가청소년위원회장상인 최우수상 수상, KSC 한국학생특기경시대회 영어 부문에서 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에 와서는 일명 '공부의 신'이라 불리며 중고등학생들에게 공부 노하우를 전수하는 명문대생 클럽 공신닷컴에서 3기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밖에 사이버한국홍보대사와 아시아평화대사로 활동한 적이 있고 EBS에 출연해 수능 외국어 영역에 대한 강의도 했다. 최근에는 < 영어의 신 > 이라는 책을 펴내고 영어 공부에 대한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20년도 채 되지 않는 이의 인생 발자취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수상경력과 활약상이 크다.

송 씨는 자신의 이력이 특별한 머리를 갖고 있거나 특별한 재주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공부라면 타성에 젖어 공부하기보다 좀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낳은 결과라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영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송 씨는 애초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흥미롭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들려준 팝송을 따라 부르면서부터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 늘어나면서 내가 흥얼거리는 영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영어 사전을 펴고 단어 하나하나를 해석하기 시작했죠."

초등학교 때 알고 있던 팝송만 1천여 곡. 그 중 가사를 외우는 것은 수백 곡에 달했다. 가사를 외우다 보니 중학교 영어 시험 문제에 가사 한 구절이 그대로 나와 덕을 본 기억도 있다.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문화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문화 요소가 영어권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호기심을 갖는다면 영어가 훨씬 친근해질 거예요."

이를테면 송 씨가 노래듣기를 좋아해 팝송을 들으면서 영어를 익힌 것처럼, 게임을 좋아한다면 영국판이나 미국판 게임을 이용해보고,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자동차 관련 외국 잡지를 읽어보거나 외국 사이트를 통해 자동차 정보를 얻어 보라는 얘기다. 영어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될 때 영어의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 행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영어에 흥미를 갖고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게 됐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송 씨는 공부를 하되 늘 동기와 요령을 찾는 데 부지런했다. 영어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토플 전문 어학원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주변에서는 중학교 1학년생이 준비하기엔 버거울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어린 송 씨는 무시했다.

토플의 지문이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재미에 영어 공부의 어려움은 상쇄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공부 동기를 찾은 후엔 토플 공부를 시작하면서 보다 쉬운 공부법도 터득했다. 영어는 통합적으로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분절적인 공부법 때문이 아닐까요. 영어를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문법 등으로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영어는 문화이기 때문이지요. 영어를 문화로 받아들이는 순간 영어 공부는 스트레스가 아닌 유쾌한 활동입니다."

송 씨가 알려준 스트레스 없는 영어학습법은 이렇다. 간단하게 말하면 단어장 하나로 모든 영역의 공부를 하라는 것. 예컨대 'apple' 이 '사과'라고 외우는 것은 선생님한테 손바닥을 맞지 않기 위한 방법일 뿐甄? 영어에서 'an apple'은 있어도 'apple'은 없듯 단어 하나의 의미만 달랑 외워서는 영어를 공부했다고 할 수 없다. 단어를 알기 위해서는 예문을 함께 외워야 한다.

예문을 통해 단어의 용도를 알고 나면 단어의 뜻이 더욱 선명하게 각인된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생활에서 당장 써먹을 수가 있다. 예문을 외우다 보면 문장 구조가 눈에 익으면서 문법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고, 예문을 외울 때 손으로 한번 쓰면서 입으로는 문장을 중얼거리게 되므로 입과 귀, 눈, 손 등 모든 감각을 한 문장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통합학습법이다. 영역별로 나눠서 공부하는 것에 비해 시간이나 노력이 상당히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영어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영어연극부 활동과 금연영어웅변대회를 준비한 것도 영어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대본을 직접 쓰고 외우고 말하면서 영어에 대한 실력이 다져지고 영어 약점도 바로잡혔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았다는 것. 당연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친구를 활용한 실용적인 공부법

지루하고 성적이 오르기 힘든 언어 영역도 즐겁게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수다를 통해서다. 송 씨는 고교 시절 엇비슷한 실력을 지닌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했다. 유난히 기숙사 식구들간의 끈끈함을 강조한 학교여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거나 수다를 떨 기회가 많았다.

신문을 볼 때나 TV를 볼 때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떨다보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알게 되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여 사고의 틀을 넓히는 기회가 됐다.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떤 부담도 없다는 것. 송 씨는 친구들과 얘기했던 내용을 종종 논술에 활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전교 1등만 모아 놓은 고등학교에서 내신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대 법대를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내신에서 모자란 점수를 논술면접에서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떤 점에서 점수를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처럼 할 말은 다 하고 나왔다는 생각에 왠지 좋은 점수가 나올 것 같더군요."

서울대 법대 입시 경험담이다. 수험생에게 친구는 적이면서 동시에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사고를 받아들여 유연성을 키울 수 있고, 모르는 것에 대해 가장 손쉽게 정답을 구할 수도 있다. 송 씨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각자 잘하는 과목에 대해선 서로 멘토가 돼주기로 한 적도 있다. 궁금증을 실시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분초를 다투는 입시생에겐 꽤 유용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건강한 자극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에 오기를 가져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송 씨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늘진 곳도 없지 않다. 서울 중계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는 늘 전교 2등만 도맡았다. 공주 한일고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전교 1등만 갈 수 있다는 얘기에 실망한 적도 많았다.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 것이 가산점이 붙는 토익을 공부한 것이었다. 영어만큼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익 시험에서 95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입시가 순조롭지는 않았다. 당시 4차에 걸쳐 입학생을 선발하는데 송 씨는 3번의 고배를 마시고 4차에서 최종 선발됐다. 3번의 절망을 겪는 동안 송 씨는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2차 실패까지는 어떻게 견뎠는데 3차에서도 떨어졌다고 하니까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화장실에서 변깃물을 내려가며 엉엉 울던 생각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입학 성적으로만 따지면 하위권이었던 송 씨가 졸업 당시 실적은 상위권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다. '두고 보자'는 오기와 '한번 해보자'는 각오를 뭉쳐 서울대 법대, 경찰대, 고려대 등 내로라하는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동시에 받아냈다.

오기를 통해 성공한 사례는 또 있다. 송 씨는 영어만큼 수학을 잘 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학 점수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영어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에 수학은 늘 부담스러운 과목이었다고 한다. 문과에 적성을 갖고 있으니 이 정도의 수학 실력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면 될 일이었지만 송 씨는 달랐다. 유독 수학에 강한 한일고에서 친구들에 비해 자신이 처져있다는 생각이 들자 특유의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어려운 문제를 접함으로써 실력을 쌓는 동안 송 씨는 수학 문제의 모든 유형을 암기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세 권의 문제집을 한 번씩 보기보다는 한 권의 문제집을 세 번씩 봄으로써 유형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했다. 모르는 것이나 개념 이해가 힘든 부분은 인터넷 강의를 이용했고 수능 기출 문제는 4번 이상 풀어봤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아이의 방식을 무조건 따라하기 보다 자신의 적성과 실력에 맞는 공부 방법을 택한 결과는 적중했다. 전국모의고사에서 수학 1등급을 따내고 대학 수능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남들이 잘하는 것은 나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남들 공부할 때 놀거나 잠들 수 없어요. 한일고를 다니는 동안 내신의 불리함 때문에 전학을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때도 나만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 오기로라도 버텨보겠다고 마음먹었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오기를 부린 덕분입니다."

송 씨의 경우를 보면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즐기거나 오기를 부리는 것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해야 하는 공부'를 '하고 싶은 공부'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원인을 짚어볼 일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억지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Posted by 콩콩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