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가져라 Na

[중앙일보 임주리]  트라우마. 대형 사고나 범죄 피해를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을 가리킨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중·고교 시절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부도를 간접 경험하고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취업 대란에 맞닥뜨린 20대 중·후반을 ‘트라우마 세대’라 일컬었다. 계간지 ‘문학동네’는 이 ‘트라우마 세대’를 주제로 한 좌담회를 겨울호에 실었다. 우석훈 교수, 김홍중 대구대 사회학과 강사, 소설가 백가흠씨, 시나리오 작가 김현진씨가 모여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겁에 질려 있는 이십대=대한민국 이십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들은 “요새 젊은이들은 노회하고 영악하고, 젊음 고유의 패기나 무모함이 부족해 보인다”는 데 동의했다. “이십대와 청춘이 최초로 분리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이제 이십대로부터 분리되어 부유(浮遊)하는 청춘을 부유(富裕)한 칠십대가 전유한다.”(김홍중)
김현진 작가는 이십대가 보는 이십대를 말했다. “가방 끈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좌파 우파에 상관없이 겁에 질려 있다”며 “나보다 시집 잘 가는 애가 있을 거야, 나보다 더 예쁜 여자를 차지할 수 있는 잘난 놈이 있겠지, 이런 식의 겁에 질려 있는데 그건 부모 세대에게 주입받은 욕망”이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진 게 당연하다’는 심리가 있다”고 말하며 “게임의 룰 자체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의 이십대는 게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IMF라는 간접경험, 불안감은 더 커져=이들은 왜 이렇게 겁에 질려있을까. 백 작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IMF 때 집에 대학생이 세 명이었다. 아버지가 안정된 월급을 받는 선생님이었음에도 당시 가정경제가 거의 무너졌다. 잘 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살려고만’ 한 것뿐이었는데. 그런 절망을 겪으면서 훨씬 더 현실적으로 계급을 인정하게 됐다.”
김현진 작가는 이십대의 심리를 두고 “가족이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IMF 경제위기를 맞은 것”에 비유했다. “맞긴 맞았는데 충격은 이차적으로 온 거다. 자기가 직접 맞은 것이 아니라 대리전을 했기 때문에 이 전투의 경험을 다들 엄청나게 오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우파와 좌파 모두 이들을 이용하려 했을 뿐 실제로 끌어주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래서 남은 건 결국 대기업과 공무원인데 이젠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청춘, ‘처세’가 아닌 ‘불화’를 꿈꿀 때=『20대, 공부에 미쳐라』 『20대, 미쳐야 살아남는다』 등 20대를 타깃으로 한 자기계발서 열풍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십대는 사실 세상과 어떻게 화해하느냐를 생각하기 이전에 세상과 불화하는 시기다.”(김홍중) “이십대가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자기계발서가 파고들었다.”(우석훈)
우 교수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문학과 예술을 공부해야 새로운 게 나온다”고 짚으며 “적대적 상호경쟁이라는 관념을 깨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진 작가는 “우리 이십대가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은 무기력감과 패배감” 이라고 말하며 덧붙였다. “공포감을 완화시키는 게 굉장한 숙제다. ‘괜찮아, 안 죽어’ 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 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져’, 이런 정신 말이다.”
임주리 기자


Posted by 콩콩마녀